가게의 컨셉을 정하고 나면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팔 것인가?’
음식점을 준비한다면 특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는 첫 가게를 준비할 때 음료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음료를 만들고 주류를 다루는 것은 제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음식이었습니다.
제 첫 가게는 음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음악에서 시작된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좋아했던 아프로큐반, 브라질리안 등의 라틴 음악에서 출발해 트로피컬한 남미의 분위기를 가진 레스토랑으로 컨셉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지금 돌아보면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저는 메뉴를 구성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컨셉이 정해졌다고 메뉴가 저절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라틴재즈 역시 어느 한 나라의 음악이라고 정의하기 어렵고, 제가 만들고 싶은 공간도 특정 국가 하나를 그대로 재현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음식도 남미 여러 지역의 유명한 메뉴를 골라 구성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저에게도 생소한 음식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손님에게는 더 생소했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창업자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메뉴와 고객이 선뜻 주문할 수 있는 메뉴 사이에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레스토랑은 카페와 조금 다릅니다.
처음 보는 카페라면 호기심으로 들어가 음료 한 잔을 주문해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담해야 하는 비용과 시간이 비교적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정하고, 이동하고, 카페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메뉴가 무엇인지조차 예상하기 어려운 가게를 선택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생소한 음식만으로는 선택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간에는 방향을 조금 바꾸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피자와 수제버거 같은 메뉴를 구성했습니다.
확실히 설명은 쉬웠습니다.
메뉴 이름만 봐도 손님이 어떤 음식인지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게의 정체성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미의 음악과 색감, 술과 분위기를 열심히 만들어놓았는데 음식만 떼어놓고 보면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메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잘 팔릴 것 같은 메뉴만 따라가면 가게가 평범해지고, 컨셉만 따라가면 손님에게 너무 낯설어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메뉴에도 대중성과 정체성 사이의 접점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은 타코였습니다.
대표 메뉴 하나가 생기자 방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다시 첫 가게를 준비한다면 저는 처음부터 타코를 대표 메뉴로 정하고 그 주변으로 메뉴를 확장했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타코가 지금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사람이 있었고, 무엇보다 제가 만들었던 공간의 컨셉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대표 메뉴가 생기면 다른 메뉴를 결정할 때도 기준이 생깁니다.
‘이것도 맛있으니까 넣을까?’가 아니라,
‘이 메뉴가 우리가 대표하는 음식과 함께 놓였을 때 자연스러운가?’
라고 질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글에서 가게의 컨셉이 인테리어와 음악, 메뉴 등 수많은 선택의 기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면, 메뉴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대표 메뉴가 메뉴판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생소한 메뉴를 팔려면 ‘먹는 방법’까지 팔아야 합니다
타코를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손님들이 물었습니다.
“타코가 뭐예요?”
설명을 듣고 주문한 뒤 음식이 나오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예요?”
지금은 타코가 훨씬 익숙해졌지만 당시에는 처음 먹어보는 손님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메뉴판에 사진이 필요해졌습니다.
단순히 음식 사진만 넣은 것도 아닙니다.
HOW TO!
먹는 방법도 함께 설명했습니다.
라임즙을 뿌리고, 기호에 따라 고수를 곁들이고, 어떻게 잡고 먹으면 되는지 손님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생소한 메뉴를 판매하려면 음식만 준비해서는 부족합니다.
손님이 그 음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안심하고 주문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까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메뉴판의 사진과 설명, 직원의 안내까지 모두 메뉴의 일부인 셈입니다.
처음 먹어본 손님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설명해서 주문한 손님들의 반응이 대부분 좋았다는 것입니다.
“타코를 여기서 처음 먹어봤는데 신선하고 맛있다.”
이런 반응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추가 주문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처음 보는 음식을 선택했고, 먹어본 뒤 만족해서 같은 자리에서 다시 주문했다는 뜻이니까요.
상품 자체로만 보면 좋은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보니 전혀 다른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맛있어서 추가 주문이 들어오는 것이 오히려 주방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잘 팔리는 메뉴가 운영하기 좋은 메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저는 타코를 3피스 단위로 판매했습니다.
이 방식에는 제가 이전까지 일했던 환경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일했던 이태원에서는 스몰디쉬와 칵테일을 가볍게 즐기고 다른 재미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 장소에서 저녁 전체를 보내기보다 여러 공간을 경험하는 문화가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자연스럽게 스몰디쉬 형태를 떠올렸습니다.
타코 3피스를 먹고 칵테일을 마시는 방식이 제가 알고 있던 소비 방식과 잘 맞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가게를 연 곳은 이태원 같은 번화가가 아니었습니다.
회사와 주거지역이 섞여 있는 상권이었습니다.
손님들의 방문 목적과 식사 방식이 달랐습니다.
이 차이를 저는 메뉴를 만들 때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타코 3피스에는 보이지 않는 일이 많았습니다
타코는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손이 꽤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또띠아를 데우고, 고기와 채소를 준비하고, 소스를 올리고, 각각의 타코를 완성해야 합니다.
여기에 다른 사이드 메뉴 주문까지 동시에 들어옵니다.
손님이 첫 번째 타코를 먹고 마음에 들어 추가 주문을 하면 이 과정이 다시 시작됩니다.
주방에서는 새로운 주문처럼 다시 조리해야 하고, 홀에서는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과정이 한두 차례 더 발생합니다.
손님의 체류시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집니다.
즉,
재주문이 많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운영 측면에서는 더 많은 조리와 이동, 더 긴 테이블 체류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음식의 맛만큼이나 ‘이 메뉴가 어떻게 팔리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맛있는 방식과 가장 운영하기 좋은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시 제가 타코를 완성된 3피스 형태로 제공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맛있는 밸런스로 손님에게 내고 싶었습니다.
또띠아와 고기, 채소와 소스의 양을 직접 맞추고 완성된 상태로 제공하면 손님은 제가 의도한 맛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레스토랑 운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메뉴를 하루에 수십 번 주문받아도 주방이 버틸 수 있는가?’
레스토랑은 완벽한 음식 한 접시만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 테이블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주문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메뉴를 설계할 때는 맛뿐 아니라 조리시간, 작업 횟수, 직원 동선, 추가 주문, 테이블 체류시간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지금 다시 타코를 판다면 저는 다르게 구성할 겁니다
만약 지금 다시 비슷한 가게를 만든다면 저는 타코라는 메뉴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판매 방식을 바꿀 것 같습니다.
3피스씩 완성된 타코를 제공하기보다 한 접시에서 충분한 식사가 가능하도록 플레이트 형태로 구성할 것 같습니다.
눈으로 봤을 때도 푸짐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기와 채소, 소스, 또띠아 등을 함께 제공하고 손님이 직접 자기 취향에 맞게 타코를 만들어 먹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처음 주문할 때 충분한 양을 선택할 수 있고, 작은 단위의 추가 주문이 반복되는 문제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이 온 사람들이 테이블에서 각자 원하는 조합으로 타코를 만들고, 서로 나누어 먹는 모습은 제가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게 안에서 만들어지는 장면’과도 잘 어울립니다.
맛의 완성도를 제가 100%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운영과 경험을 함께 생각한다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격만 낮춘다고 손님이 선택하기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메뉴를 구성할 때 객단가가 높아지는 것을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작은 단위로 주문할 수 있는 것이 부담이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와 식사를 하기 위해 가게를 고를 때 가격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위기의 가게인지, 어떤 음식을 파는지, 함께 가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지, 후기는 괜찮은지 등을 함께 고려합니다.
이미 저녁 약속을 위해 시간과 이동을 투자하기로 했다면 단순히 가장 저렴한 메뉴를 찾는 것만이 선택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가격이 조금 높아지더라도 ‘여기에서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는 구성이 더 선택하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메뉴 가격을 결정할 때도 한 접시의 숫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그 가격으로 어떤 경험과 식사를 얻게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메뉴를 구성할 때 세 가지를 함께 보세요
지금 다시 음식점 메뉴를 만든다면 저는 세 가지를 함께 확인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정체성입니다.
이 메뉴가 우리 가게에서 팔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다른 가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메뉴를 단순히 잘 팔릴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넣고 있지는 않은가?
두 번째는 접근성입니다.
손님이 메뉴판을 봤을 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가?
생소하다면 사진이나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가?
처음 먹어보는 사람도 주문해볼 만큼 진입장벽을 낮출 방법이 있는가?
세 번째는 운영성입니다.
주문이 몰렸을 때도 만들 수 있는가?
조리에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가?
추가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과 홀에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한 테이블을 서비스하기 위해 직원이 몇 번 움직여야 하는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컨셉에는 잘 맞지만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 메뉴가 될 수도 있고, 잘 팔리지만 가게의 정체성을 흐리는 메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맛있고 잘 팔리지만 팔면 팔수록 주방이 힘들어지는 메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표 메뉴를 정했다면 판매되는 장면까지 상상해보세요
첫 번째 글에서는 내가 만들고 싶은 가게의 한 장면을 그려봤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그 장면 안에 어떤 손님이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테이블 위를 한번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무엇이 놓여 있나요?
몇 명이 함께 먹고 있나요?
한 접시를 나누어 먹나요?
각자 하나씩 주문하나요?
먹다가 추가 주문을 하나요?
직원은 그 테이블을 몇 번 방문하나요?
손님이 메뉴를 처음 봤을 때 바로 이해할 수 있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메뉴가 우리 가게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나요?
메뉴를 정한다는 것은 맛있는 음식 목록을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무엇을 팔 것인지, 누구에게 팔 것인지, 어떻게 주문하고 어떻게 먹게 할 것인지, 그리고 가게는 그것을 어떻게 반복해서 만들어낼 것인지까지 설계하는 일입니다.
대표 메뉴 하나를 정했다면 그 음식의 레시피만 보지 말고, 그 메뉴가 주문되는 순간부터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까지 한번 그려보세요.
그 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오픈 전에 발견할수록 실제 장사는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