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준비] 음식점 주방 동선 설계, 도면에 냉장고부터 넣지 마세요

저라면 지금 빈 매장 도면 한 장을 받고 주방과 바를 설계해야 한다면 냉장고부터 그리지 않을 겁니다.

먼저 한 가지를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이 가게에서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인가?

음식이 중심이고 조리 과정이 복잡한 레스토랑이라면 주방일 것입니다.

반대로 음식은 비교적 간단하고 커피나 칵테일처럼 음료 제조가 매장의 중심이라면 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공간부터 정하고 나머지를 바깥으로 확장해나갈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방 동선은 냉장고와 싱크대를 빈 공간에 잘 끼워 넣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이 하루 종일 어떻게 움직일지를 설계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주방 동선보다 먼저 메뉴가 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방 설계는 생각보다 앞 단계의 결정과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팔 것인지 알아야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알아야 크기와 수량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제야 작업대와 냉장·냉동고, 싱크, 화구 등의 위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조리만 하는 매장과 여러 개의 화구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매장의 주방은 같을 수 없습니다.

칵테일 몇 종류만 판매하는 매장과 생과일, 허브, 여러 종류의 주스와 얼음을 계속 사용하는 바 역시 필요한 장비가 다릅니다.

그래서 메뉴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방부터 완성해버리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메뉴를 바꿨는데 새로운 장비가 필요할 수도 있고, 냉장고 용량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장비 때문에 전기나 수도가 추가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단순히 메뉴판 몇 줄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물의 종류가 바뀌고, 작업대가 바뀌고, 전기와 수도가 바뀌면서 처음 설계했던 동선까지 틀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메뉴를 어느 정도 정한 뒤 주방과 바를 설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간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먼저 찾는 것은 가장 오래 머무를 자리입니다.

음식이 중심이라면 주방의 메인 작업공간이 될 것이고, 음료가 중심이라면 바텐더의 작업대가 될 수 있습니다.

가게가 10평이라고 해서 모든 1평의 가치가 같지는 않습니다.

하루에 몇 번 들어가는 창고의 1평과 직원 한 명이 영업시간 내내 서서 수백 번 손을 움직이는 작업공간의 1평은 다릅니다.

공간이 부족하면 모든 곳을 조금씩 줄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간부터 최적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한 번 움직이는 세 걸음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백 번 반복하는 세 걸음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도면에 냉장고를 그리기 전에 사람부터 세워보세요

저와 함께 첫 매장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모두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일하기 편한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에서는 작업대가 중심이었습니다.

바텐더가 서는 메인 작업대의 왼쪽에는 과일, 허브, 주스 등을 보관하는 토핑 냉장고를 배치했습니다.

오른쪽에는 제빙기를 놓고, 얼음을 꺼낸 뒤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위쪽에 얼음분쇄기를 배치했습니다.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조금 이해하기 쉽습니다.

제빙기가 바 반대편에 있다고 해도 얼음 한 번 가지러 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영업시간 동안 그 일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물을 먼저 배치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일할 사람을 먼저 세워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주문 하나를 처리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어느 손으로 무엇을 꺼내는지.

뒤를 돌아야 하는지.

몇 걸음을 움직여야 하는지.

하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생각하면 자주 사용하는 물건부터 자연스럽게 작업자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설거지 위치도 싱크가 들어갈 빈자리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용한 잔과 식기는 홀에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면 서버가 가져온 잔을 어디에 내려놓을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는 홀 서버가 사용한 잔을 가져왔을 때 바텐더의 작업공간 깊숙이 들어오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설거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설거지할 잔이 메인 바 작업대 위에 쌓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싱크 주변에는 일반쓰레기와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습니다.

결국 설거지 하나도 싱크대 하나 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용 → 회수 → 폐기 → 세척 → 다시 보관

이 과정 전체를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주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료가 들어오는 곳부터 손질되고 조리되고 음식으로 나간 뒤 사용한 식기가 돌아오는 과정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직원끼리 만나지 않는 동선도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혼자 일한다면 비교적 간단합니다.

문제는 두 명 이상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저희 매장의 바는 ㄱ자 형태였습니다.

ㄱ자 안쪽은 사실상 바텐더의 작업구역으로 정했습니다.

홀 서버는 그 안까지 들어오지 않고 바깥쪽에서 움직이거나 ㄱ자가 시작되는 지점 정도까지만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음료를 받아가는 위치와 사용한 잔을 가져오는 위치도 가능하면 바텐더의 주 작업공간과 겹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주문이 몰렸을 때 서버가 음료를 가지러 올 때마다 바텐더가 비켜줘야 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직원 한 명의 동선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동선을 동시에 그려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운영 규칙으로 해결했습니다

아무리 동선을 잘 설계해도 작은 매장에서 직원끼리 전혀 마주치지 않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몇 가지 룰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칼을 들고 작업하고 있는 사람의 뒤로는 지나가지 않는다.

바텐더든 요리사든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 뒤를 지나가야 한다면 최대한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서로 다치지 않도록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동선 설계가 도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먼저 공간으로 최대한 충돌을 없애고, 그래도 남는 부분은 운영 규칙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오픈주방이라고 모든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습니다

첫 매장은 주방이 손님에게 보이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오픈주방을 좋아했습니다.

직원들이 움직이고 음식을 만들고 접시가 나오는 모습 자체가 공간에 생동감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만들었던 가게에서는 손님과 직원이 마주 보는 바와 주방이 매장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주방의 모든 작업을 완전히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적당한 높이는 손님이 봤을 때 직원의 가슴 위쪽과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직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보이지만 작업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세세한 과정은 어느 정도 가려집니다.

청결하게 운영하는 것과 별개로, 손으로 식재료를 다루거나 토핑하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직원 입장에서도 모든 동작이 완전히 노출되는 환경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좋은 오픈주방은 모든 것을 공개하는 주방이라기보다,

움직임은 보여주고, 작업은 적당히 가리는 주방에 가까웠습니다.

도면에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의 자리도 필요합니다

주방과 바를 설계할 때 작업공간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수납과 창고입니다.

영업을 시작하면 가게에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쌓입니다.

여분의 술과 음료, 식재료, 휴지, 세제, 청소용품, 포장재, 각종 소모품과 여분의 잔까지.

이 물건들은 당장 작업대 위에는 필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가게 어딘가에는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물건들이 손님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아무리 예쁘게 만든 공간이라도 홀 한쪽에 두루마리 휴지 묶음과 세제통, 콜라 박스가 우르르 쌓여 있으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갑자기 너무 현실적입니다.

저는 공간을 만들 때 손님이 그 가게의 분위기에 몰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물건들은 가능하면 보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컨셉을 만드는 것만큼 컨셉과 관계없는 것을 잘 숨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하게 남은 공간을 아예 창고로 만들었습니다

첫 매장은 구조가 조금 특이했습니다.

반듯한 네모 형태가 아니었고 한쪽에 조금 튀어나온 공간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면 활용하기 애매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벽을 세워 아예 창고로 만들었습니다.

매장 안에서도 들어갈 수 있게 하고 건물 쪽에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유용했습니다.

손님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물건을 한곳에 모아둘 수 있었고 홀과 작업공간은 훨씬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창고는 직접 매출을 만드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 도면을 보면 그 면적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테이블 하나를 더 놓으면 몇 명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업을 시작하면 물건은 반드시 생깁니다.

그리고 수납공간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그 물건들이 결국 가게 어딘가를 창고로 만들어버립니다.

바 옆이 될 수도 있고, 카운터 아래가 될 수도 있고, 홀 구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별도의 창고가 없다면 공사할 때 수납공간을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모든 매장에 별도의 창고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는 인테리어 공사 단계에서 수납공간을 함께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볼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목공 작업이 진행된다면 벽 한쪽에 천장까지 올라가는 큰 장을 짜거나, 작은 다락방처럼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문을 닫으면 완전히 가려지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때도 단순히 많이 들어가는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것은 꺼내기 쉬운 곳에 두고, 여분의 재고는 안쪽이나 위쪽에 둘 수 있습니다.

무거운 것은 아래쪽에 두고 청소용품이나 세제처럼 식품 및 식기와 분리할 필요가 있는 것은 별도의 구획을 만들 수 있습니다.

수납 역시 영업 동선의 일부입니다.

도면 위에서 가게의 하루를 한번 돌려보세요

저라면 주방이나 바 도면을 어느 정도 만들었다면 마지막으로 기물의 크기만 확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도면 위에서 가게를 하루 운영해볼 것 같습니다.

손님이 들어옵니다.

주문을 받습니다.

주문이 주방과 바에 전달됩니다.

바텐더가 음료를 만듭니다.

요리사가 음식을 만듭니다.

서버가 음식과 음료를 가져갑니다.

빈 접시와 잔이 돌아옵니다.

쓰레기가 생깁니다.

설거지를 합니다.

재료가 떨어집니다.

창고에서 새 재고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다시 주문이 들어옵니다.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 몇 번 반복해보면 도면만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빙기는 왜 여기에 있어야 하지?

토핑 냉장고는 어느 방향으로 열리지?

서버는 어디에서 음료를 받아가지?

다 쓴 잔은 어디에 내려놓지?

쓰레기는 어디에서 버리지?

두 직원은 어디에서 마주치지?

재고가 떨어지면 어디로 가지?

콜라 박스와 휴지는 어디에 숨기지?

이 질문들의 답을 하나씩 도면에 넣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음식점 주방 동선 설계에 가깝습니다.

좋은 동선은 일할 때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동선은 금방 느껴집니다.

냉장고를 열러 계속 걸어가야 하고, 음료를 받을 때마다 서로 비켜줘야 하고, 설거지할 잔이 작업대에 쌓이고, 필요한 물건을 찾으러 계속 창고에 들어가야 합니다.

반대로 잘 만든 동선은 의외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냥 손을 뻗으면 필요한 것이 있고, 서로 방해하지 않고 움직이고, 사용한 것은 자연스럽게 다음 자리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처음 가게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예쁜 3D 도면을 보면서 공간을 상상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봤으면 합니다.

그 안에 사람을 한 명 세워보세요.

그리고 실제 영업시간 동안 그 사람이 수백 번 반복하게 될 움직임을 생각해보세요.

가장 많이 머무는 자리를 먼저 편하게 만들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건을 그 사람 가까이에 두고, 다른 직원의 길과 겹치지 않게 하고, 손님에게 보여줄 것과 숨길 것을 구분합니다.

결국 좋은 주방 동선은 공간을 예쁘게 나누는 일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반복될 하루를 미리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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